어느덧 다시 날씨가 추워지고 있습니다. 겨울 스포츠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반가운 소식이지요. 농구, 배구 등 다채로운 실내 스포츠들이 일찍이 개막해 한창 시즌 중에 있습니다. 


NBA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 시즌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살짝 불안불안한 출발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전력의 50%가 감독이라는 샌안토니오는 NBA의 퍼거슨, 포포비치 감독의 지휘 아래 에이스 카와이 레너드가 없이도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지요. 


그리고 여기 이 선수가 있습니다. '그리스 괴인'(The Greek Freak)으로 불리며 지난 시즌 동부 MVP에까지 선정된 야니스 아테토쿤보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이번 2017-2018 시즌에 작년보다 훨씬 더 발전한 기록을 보이며 팬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은 이 야니스 아데토쿤보라는 어마어마한 괴물 선수를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아데토쿤보? 아테토쿤보? 안테토쿤보?

어떻게 불러야 돼?


보통 이렇게 미국 밖의 국적을 지닌 선수들, 특히 아프리칸 선수들은 그 이름이 공식적으로 정해지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과연 어떤 발음으로 불러야 할 지 어렵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만 해도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를 헤르미온느라고 부르고 있지만, 현지 발음은 '헐마이오니'에 가까운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한 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시 현지 발음대로 불러줘야 한다는 운동이 일기 시작하면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라는 표기를 쓰는 언론들이 있었는데,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하여간에 야니스 아데토쿤보의 이름은 요루바어라는 단어입니다. 스펠링은 'Adetokunbo'이구요. 저렇게 본다면 아데토쿤보라고 부르는 것이 맞아 보입니다. 하지만 아데토쿤보 본인이 자신의 공식 SNS에 본인의 이름을 '야니스 안테토쿤포'라고 읽어달라고 공식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상황이 종결되었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불러달라는데 누가 이의를 달겠어요?


하지만 국내 표기는 여전히 야니스 아데토쿤보 혹은 아테토쿤보이기 때문에 이 포스팅에서도 그렇게 부르는 것을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당사자는 안테토쿤포라고 불리기를 원한다는 거! 미들 네임이 우고이므로 풀 네임은 야니스 우고 안테토쿤포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가난했던 소년이 NBA에 입성하기까지!

그의 비하인드 인생역전 감동 스토리


야니스 아테토쿤보(아데토쿤보)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나이지리아 국적의 나이지리아 사람들이었는데 그리스로 불법 이민을 와 아테토쿤보를 낳은 것이지요. 때문에 아테토쿤보 역시 불법체류자였습니다. 그리스에서 태어났음에도 그리스 시민권이 없었습니다. 언제 쫓겨나도 이상할 일이 없었습니다.

아테토쿤보의 아버지의 수입원은 일정치 않았습니다. 문자 그대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아데토쿤보에게는 위로 타나니스라는 형이 하나 있었는데 둘이 길거리에 나가 신발을 팔면서 생계에 간신히 보탬이 되고 있었습니다. 형제의 미래는 암울했습니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사흘 가까이 굶는 것은 예사일 정도라고 하니,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테토쿤보에게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한줄기 빛이 찾아 들었습니다. 나날이 자라는 그의 어마어마한 피지컬을 눈여겨 본 그리스의 2부리그 농구단에서 입단 제의를 하게 된 것이지요. 원래 축구선수를 하고 싶었던 아테토쿤보는 잠시 망설였지만 오래지 않아 제의를 수락했습니다. 자신의 꿈보다, 당장의 가난을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의 놀라운 재능을 부여받은 아데토쿤보는, 매일 축구만 했던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손으로 하는 구기종목 역시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마냥 놀랍게 습득해나갔습니다. 정말 동네 농구장만도 못한 곳에서의 플레이였지만 소위 리그 자체를 씹어먹었고, 그의 기량에 반한 구단주는 가족 모두를 안정적으로 살게 도와줬지요. 심지어 U-20 농구대회에 그를 참가시키고자 그리스 정부에서 그토록 안내주던 시민권마저 기꺼이 손에 쥐어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문은 미국에까지 퍼졌습니다. 농구를 잘 하는 사람이라면 전세계 어디든 발굴될 수 있다는 NBA 스카우터 시스템의 귀신같은 운영능력은 그리스 2부리그 땅콩만한 구단에까지 손을 뻗칠 수 있었습니다. 


밀워키의 스카우터들은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다른 구단이 먼저 채 가지 않게 밀착 마크를 하며 야니스 아데토쿤보라는 이름도 어려운 괴물의 성장을 흐뭇하게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아데토쿤보의 피지컬과 농구재능이 어느정도 장착됐을 무렵인 2013년, 그는 최연소 지명 선수로 당당히 NBA에 입성합니다.



"정말, 정말로 행복해요. 저와 제 가족들의 지난 날은, 여러분이 상상도 하실 수 없을만큼 정말 끔찍하고 힘들었거든요. 저는 이제 NBA로부터 지명을 받았고, 삶이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 껏 끼니를 챙길 수 있다는 것. 바로 그것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그동안 사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집에 계신 부모님도 저의 지명을 행복하게 지켜보셨을 것입니다. 보시고 계시나요? 모두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하늘도 감동받은 걸까요. 그 뒤로 야니스 아데토쿤보의 NBA 커리어는 말 그대로 고공상승중입니다. 케빈 듀란트의 피지컬을 가지고 있으면서 르브론 제임스 같은 플레이를 한다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찬사를 받고 있는 이 선수는 지금까지 보여주는 것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차세대 제왕 후보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가난을 알기에, 저절로 효자가 된

야니스 아데토쿤보의 웃픈 헤프닝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NBA에 입성하고 나서도 부모님은 미국에 건너오지 못했습니다. 부모님과 미국에서 상봉하기 전까지 18살의 소년 아데토쿤보는 혼자서 선수생활을 하며 외롭게 지냈습니다. 낯선 시스템과 환경에서의 적응과 타지에서의 자취생활을 동시에 해야했던 것이죠.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받은 소득의 거의 전부를 매번 부모님께 꼬박 부치며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겨울이었습니다. 경기가 있는 날 오후, 아테토쿤보는 그리스에 있는 부모님께 돈을 부치고자 은행에 잠시 들렀습니다. 그런데 아테토쿤보는 그만 자신이 경기장까지 가는 데 써야 할 교통비마저 모조리 부모님께 부쳐버리고 맙니다. 한 겨울이었던 당시의 실외기온은 영하 20도, 체감온도는 30도에 육박했습니다.


결국 아데토쿤보는 발을 동동 구르며 한참을 밖에서 떨다가, 지나가던 밀워키 팬의 차를 얻어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를 태워준 밀워키 팬에게 언론들의 인터뷰가 쇄도했는데, 그 때 그가 한 말이 팬들을 맴찢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점퍼가 너무 부실해보였어요. 그가 겨울에는 보다 따뜻한 코트를 사입었으면 좋겠더군요."



부모님이 고생하시는데 어찌 내가...

아테토쿤보 형제의 눈물나는 일화


다음 일화는 밀워키의 지역 언론인 '저널 센티널' 지에 소개된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아데토쿤보가 형인 타나니스와 함께 레스토랑의 들렀을 때의 일입니다. 형에게 맛있는 걸 대접해주겠다며 호탕하게 고급 레스토랑으로 데려간 아테토쿤보는 어깨를 으쓱하며 형에게 얘기했습니다.


"형, 뭐든지 다 시켜. 가격은 보지 말고"


그런데 이를 듣고 있던 형의 표정은 어쩐지 그리 들떠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데토쿤보에게 가볍게 씨익 웃은 형은 말했습니다.


"음... 네가 먼저 골라."


형의 말을 들은 아데토쿤보도 어딘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습니다. 이윽고 자신도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올랐죠.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형 시키는 거랑 같은 거 먹을 테니까 형이 골라."


한참을 고민하던 형이 마침내 꺼내놓은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음... 그러면 샐러드만 먹을까?"


그 날 아데토쿤보 형제는 그 좋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단지 샐러드만 한 접시씩 비우고 나왔다고 합니다. 먼 곳 그리스에서 여전히 고생하고 있을 부모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꿈의 무대, NBA 선수가 되어 100만 달러의 연봉을 받게 되었지만, 그는 차곡차곡 저금만 했습니다. 여자를 만나지도, 유흥을 하지도, 미국에서는 그 흔한 파티를 즐기는 법도 없었습니다.



그가 NBA 시즌을 보내며 지른 유일한 사치는 취미 겸 구매한 40만 원짜리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얼마지 않아 그는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혼자 웃고 즐길 자신이 없다'며 팀 내의 코치에게 되팔아 고향 그리스로 그 돈을 모조리 붙였다고 합니다.


20살도 채 되지 않는 미성년자였던 아테토쿤보의 이러한 책임감과 성숙함이 그를 지명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고 훗날 밀워키의 단장은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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